
역사에서 배우는 기술사업화 혁신전략 100선 — ②
1597년 명량. 조선 수군에게 남은 배는 12척이었다. 왜군의 전선은 100척을 훌쩍 넘는 압도적인 규모였다.
조정에서는 수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나왔다. 그러나 이순신은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명량에서 이순신이 보여준 것은 정신력만이 아니었다.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거센 조류, 조선 수군의 화포 전술, 적의 전투 방식과 병력 차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이었다.
나는 여기서 오늘날 기술사업화 전략의 원형을 본다.
좋은 기술 하나가 성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제한된 자원을 연결하여 성과를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거북선이라는 발명품 자체보다 이순신이 문제를 정의하고 정보를 활용하며 조직과 기술을 움직인 방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순신 기술사업화 전략 ① — 문제 정의에서 시작하라
이순신의 기술사업화 전략에서 첫 번째로 배울 것은 문제 정의다.
거북선은 조선 최초의 군함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 수군에는 이미 판옥선이라는 주력 전함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배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왜군의 강점을 무력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왜군은 적선에 접근해 배에 올라탄 뒤 싸우는 근접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핵심 질문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적이 우리 배에 쉽게 올라타지 못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거북선의 덮개 구조와 철침, 여러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는 포문은 이러한 전투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기술사업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R&D가 먼저 기술을 개발한 뒤 나중에 “이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순서를 바꿔야 한다.
기술 → 시장 탐색이 아니라 문제 → 해결책 → 기술 → 시장의 순서로 접근해야 한다.
좋은 기술사업화는 기술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순신 기술사업화 전략 ② — 데이터와 기록으로 승부하라
이순신의 기술사업화 전략에서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데이터와 기록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상황을 기록했는지 알 수 있다. 군사 활동뿐 아니라 날씨, 인적 상황, 전쟁 준비와 주변 정세 등 다양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기록했다.
명량해전에서도 울돌목이라는 특수한 전장 환경을 활용했다. 좁은 해협과 빠른 물살은 압도적인 숫자의 적군이 한꺼번에 공격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ata-Driven Decision Making)과 닮아 있다.
기술사업화 역시 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기술성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 규모, 고객 문제, 경쟁기술, 개발기간, 제품 출시 시점, 손익분기점, 투자회수 가능성 등을 지속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과거에는 사람이 경험을 통해 판단했다면 이제는 축적된 데이터를 AI로 분석하여 성공 가능성과 위험을 더 빠르게 탐색할 수 있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기록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
좋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좋은 데이터일 수 있다. 이순신의 기록과 준비는 기술사업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다.
이순신 기술사업화 전략 ③ — 기술·데이터·시장을 연결하라
이순신의 기술사업화 전략에서 세 번째 교훈은 연결이다.
이순신의 강점은 특정 무기 하나에만 있지 않았다. 판옥선과 화포, 수군의 훈련, 지형과 조류에 대한 정보, 지휘체계를 하나의 전투 시스템으로 결합했다.
기술사업화도 같은 원리다.
AI 시대의 경쟁은 더 이상 “누가 더 좋은 기술을 개발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을 데이터와 연결하고, 데이터를 AI와 연결하고, AI를 기업과 연결하고, 최종적으로 시장성과와 연결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KISTI와 같은 과학기술 정보·데이터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학기술정보와 슈퍼컴퓨팅, 데이터·AI 분석 역량이 연구자와 기업의 기술사업화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이순신이 바다의 지형과 조류라는 정보를 전투력으로 전환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 데이터를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논문 수에서 시장성과로, 특허 수에서 사업화 성공률로 성과관리의 중심을 이동시켜야 한다.
결국 기술사업화의 경쟁력은 기술 하나의 우수성이 아니라 기술·데이터·사람·시장·자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에서 결정된다.
이번 편의 핵심 3가지
- 문제 정의 — 좋은 기술사업화는 기술이 아니라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 데이터와 기록 — 감이 아니라 측정과 기록을 기반으로 의사결정해야 한다.
- 연결 — 기술·데이터·AI·기업·시장이 연결되어야 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진다.
스스로 점검해보기
- 지금 추진하는 기술은 어떤 고객의 문제에서 시작됐는가?
- 중요한 의사결정의 근거가 경험과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축적되고 있는가?
- 기술이 제품과 시장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연결고리가 부족한가?
자주 묻는 질문
Q. 거북선을 기술사업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거북선 자체를 현대적 의미의 ‘사업화 제품’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실제 현장의 문제를 정의하고 기존 기술을 개선하여 성과를 만들어낸 문제해결형 기술혁신 사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기술사업화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이다.
Q. 이순신의 기록이 기술사업화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기록이 축적되어야 판단을 검증하고 다음 의사결정을 개선할 수 있다. 기술사업화에서도 개발기간, 시장반응, 매출, 손익분기점, 투자회수 등의 데이터를 축적해야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
Q. AI 시대에도 400여 년 전 이순신의 전략이 유효한가?
도구는 달라졌지만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 정의 → 데이터 확보 → 전략 수립 → 자원 연결 → 실행 → 성과 측정이라는 과정은 AI 시대의 기술사업화에서도 핵심이다.
이순신 기술사업화 전략이 AI 시대에 주는 교훈
명량의 핵심은 단순히 12척으로 많은 적선을 상대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내고, 정보를 활용하고, 기술과 사람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했다는 데 있다.
기술사업화도 결국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지금 가진 자원으로 어떤 판을 만들 것인가?”
이순신은 400여 년 전에 그 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다음 편에서는 과학기술을 국가 시스템으로 연결한 장영실의 기술사업화 혁신전략을 살펴본다.
「역사에서 배우는 기술사업화 혁신전략 100선」의 세종대왕 편과 정약용 편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