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기술은 반드시 성공할까?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고 세계적인 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기술도 시장에 도달하기 전에 무너질 수 있다. 노바티스의 심혈관질환 신약 후보물질 ‘펠라카르센(pelacarsen)’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아사이언스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인용한 「차세대 심장약, 임상3상 실패에 학계 충격」(2026년 9월 6일)에서 펠라카르센이 대규모 임상 3상에서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펠라카르센은 혈중 지질단백질(a), 즉 Lp(a)를 낮추는 치료제다. Lp(a)는 LDL과 구조가 비슷한 유전적 위험인자로, 혈중 농도가 높을수록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Lp(a)는 식습관이나 운동만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직접 낮추는 펠라카르센은 차세대 심장약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임상시험에는 심혈관질환 병력과 높은 Lp(a) 수치를 가진 환자 8,323명이 참여했다. 약물 투여로 Lp(a) 수치는 낮아졌지만, 심장마비와 뇌졸중 등 주요 심혈관 사건을 줄이는 효과는 입증하지 못했다.
기술은 목표한 수치를 낮췄다. 그러나 환자가 원하는 결과까지 만들지는 못했다. 이것이 좋은 기술을 돈 되는 R&D로 전환하기 어려운 이유다.
1. 좋은 기술은 왜 무너졌나 — 수치를 낮추는 것과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다르다
Lp(a) 농도가 높은 사람에게서 심혈관질환이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는 강력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두 현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상관관계만으로 Lp(a)가 질병을 직접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름은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주름을 없앤다고 신체의 노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주름이 노화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특정 바이오마커를 낮추는 기술적 효과와 환자의 건강을 개선하는 치료 효과를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R&D 초기부터 두 가지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 이 물질을 기술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가?
- 이 물질을 조절하면 환자의 생존과 삶이 실제로 개선되는가?
좋은 논문과 특허, 뛰어난 실험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돈 되는 R&D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기술이 해결한 문제가 고객이 원하는 최종 성과로 연결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2. 임상 3상은 무엇을 확인했나 — 기술적 성공보다 중요한 환자 성과
연구자에게는 목표물질을 정확하게 억제하는 것이 기술적 성공일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원하는 것은 검사 수치의 변화만이 아니다.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이 줄고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는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와 안전성이 우수한지를 판단한다. 병원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사용할 가치가 있는지를 살핀다. 보험자는 추가 비용을 지불할 만큼 치료 성과가 분명한지를 따진다.
신약의 가치는 연구자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환자·의사·병원·보험자·규제기관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한다. 어느 한 단계에서 가치가 입증되지 않으면 좋은 기술도 허가·처방·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SuccessOracle의 CSS로 보면 펠라카르센은 심혈관질환이라는 큰 문제(Problem), 유망한 기술(Technology), 거대한 시장(Market), 글로벌 기업의 실행역량(Execution)을 갖췄다.
하지만 기술적 효과가 환자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수익성(Return)의 전제가 흔들렸다.
Technology 점수가 높다고 Return 점수까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은 작동했지만 고객가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고, 고객가치를 입증하지 못하자 수익경로도 멈춘 것이다.
3. 실패해도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 실패 데이터를 돈 되는 R&D의 자산으로
이번 결과를 연구자의 실패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8,323명의 환자가 참여한 대규모 임상시험은 Lp(a)를 낮추는 것만으로 전체 환자군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잘못된 가설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막아준 값진 데이터다. 앞으로 적합한 환자군, 투여 시기, 치료 방법과 Lp(a)의 역할을 다시 분석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Return Map도 ‘후보물질 발굴→임상시험→허가→출시’로 단순하게 그려서는 부족하다.
표적 발견→인과성 검증→바이오마커 변화→환자 성과 확인→허가·급여→처방 확대→누적매출
각 단계에 검증 기준과 중단 조건을 둬야 한다. CSS와 Return Map은 연구자를 평가하고 탈락시키는 성적표가 아니다. 어디에서 가설이 흔들렸고, 무엇을 보완해 다시 도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건강진단표이자 내비게이션이다.
세종대왕은 반대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백성의 삶을 개선한다는 목적을 놓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도 불리한 조건과 좌절 앞에서 현실을 다시 분석하고 기술·지형·정보·훈련을 결합해 새로운 길을 찾았다.
두 사람은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목적을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바꿔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위대하다.
연구자들이여, 한 번의 실패로 자신의 기술과 가능성을 부정하지 말자. 임상 실패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밝혀낸 연구 결과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 가설을 수정하고 새로운 치료경로를 찾으면 그 데이터는 다음 성공의 자산이 된다.
돈 되는 R&D는 실패하지 않는 연구가 아니다. 실패를 빨리 발견하고 비용을 통제하면서 고객가치와 수익경로를 다시 찾아가는 연구다.
좋은 기술은 한 번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실패를 데이터로 바꾸는 연구자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실패해도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