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기술이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고도 기대했던 시장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사례를 적지 않게 경험했다. 반대로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던 아이디어가 고객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최근 김은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좋은 기술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에서 기술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를 기술력 부족보다 ‘성공하는 과정의 설계 부족’에서 찾는다. 고객은 기술의 우수성보다 문제 해결을, 투자자는 특허 자체보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본다는 것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김은선 「좋은 기술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 2026.8.23.)
나는 이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좋은 기술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30여 년 동안 기술사업화 현장을 지켜보면서 얻은 결론은 비교적 명확하다. 기술개발만 잘해서는 부족하다. 좋은 기술을 발굴하는 순간부터 고객을 만나고 시장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순간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하고 관리해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해답은 기술사업화 성공 5단계다.
고객문제 발견 → CSS 성공 가능성 진단 → Return Map 성공경로 설계 → EWS 위험 조기관리 → 시장성과 측정·환류
1. 고객문제 발견과 CSS — 성공할 기술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기술사업화의 첫 단추는 기술이 아니다.
고객의 문제다.
많은 R&D가 “우리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시장은 기술의 우수성보다 먼저 묻는다.
“그 기술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가?”
따라서 기술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누가 고객인가?
- 그 고객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고객문제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부터 개발하면 연구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사업화에는 실패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원칙은 명확하다.
좋은 기술을 찾기 전에 좋은 문제를 찾아야 한다.
좋은 고객문제를 발견했다면 다음에는 그 기술이 실제 사업으로 발전할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진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내가 제안하는 것이 CSS(Commercialization Success Screening)다.
CSS는 기술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다섯 가지 영역에서 살펴본다.
Problem — 해결해야 할 고객문제가 분명한가?
Technology — 기술적 차별성과 경쟁력이 있는가?
Market — 충분한 시장과 구매고객이 존재하는가?
Execution — 사업을 실행할 사람과 조직이 있는가?
Return — 투자한 시간과 자금 이상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총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기술성은 매우 높은데 Problem 점수가 낮다면 추가 기술개발보다 고객검증이 먼저다. 시장성은 높은데 Execution이 부족하다면 연구비를 더 지원하기보다 생산·마케팅·투자 등의 사업화 파트너를 보강해야 한다.
즉 CSS의 목적은 좋은 기술과 나쁜 기술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방해하는 ‘약한 고리’를 시장진입 전에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CSS를 ‘기술사업화 건강검진’이라고 부른다.
2. Return Map과 EWS — 성공경로를 설계하고 실패를 조기에 발견하라
좋은 기술을 선정했다면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이 기술을 어떻게 시장의 성공까지 가져갈 것인가?”
우리는 흔히 기술개발이 끝난 뒤 사업화를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 전에 사업화 성공경로부터 그려야 한다.
제품은 언제 시장에 출시할 것인가?
첫 번째 고객은 누구인가?
누가 생산하고 판매할 것인가?
언제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인가?
투자한 R&D 비용은 언제,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나의 지도처럼 보여주는 것이 Return Map이다.
Return Map에서는 네 가지 핵심지표를 활용한다.
- TM(Time to Market) — 기술 조사·선정부터 시장출시까지 걸리는 시간
- BEAR(Break-Even Arrival) — 시장출시부터 손익분기점 도달까지 걸리는 시간
- BET(Break-Even Time) — 기술 조사·선정부터 손익분기점까지 걸리는 전체 기간
- RF(Return Factor) — 투입된 자금과 비교해 시장에서 만들어낸 성과
Return Map을 활용하면 R&D를 바라보는 질문 자체가 달라진다.
기존에는 주로 “기술개발에 성공했는가?”를 물었다면 앞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언제 시장에 나가고, 언제 돈을 벌며, 얼마의 가치를 만들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성공경로를 설계해도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사업은 거의 없다.
기술개발이 늦어질 수 있다. 경쟁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고객의 요구가 달라지고 인증이 지연되거나 투자유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네 번째 단계가 EWS(Early Warning System), 기술사업화 조기경보시스템이다.
기존의 사후평가는 사업이 끝난 뒤 묻는다.
“왜 실패했는가?”
EWS는 질문의 시점을 앞으로 당긴다.
“실패하기 전에 위험신호를 발견할 수 없었는가?”
시장출시 지연, 고객검증 악화, 비용 증가, 손익분기점 도달 지연, 예상 수익성 하락 등의 신호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위험신호가 발견되면 추가 기술개발, 고객 변경, 목표시장 전환, 사업화 파트너 보강, 투자전략 수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과감하게 사업을 중단하는 것도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실패한 뒤 잘 평가하는 것보다 실패하기 전에 발견하고 수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3. 시장성과 측정과 환류 — AI로 성공과 실패를 다음 R&D의 자산으로 만들어라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시장성과 측정과 환류(Feedback)다.
그동안 R&D 성과를 설명할 때 논문, 특허, 기술이전, 기술료 같은 지표를 많이 활용해왔다.
물론 이러한 지표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사업화 관점에서는 그 다음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는가?
시장진입까지 몇 년이 걸렸는가?
언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는가?
R&D 투자 대비 얼마의 시장가치를 만들어냈는가?
기술이전은 기술사업화의 끝이 아니라 시장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한 단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측정한 결과를 다음 R&D에 다시 활용해야 한다.
CSS에서 예상했던 성공 가능성과 실제 Return Map의 결과를 비교하고, EWS에서 나타난 위험신호까지 축적하면 매우 중요한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어떤 고객문제를 가진 기술이 성공했는가?
어떤 CSS 영역이 낮을 때 실패 가능성이 높아졌는가?
TM이 길어지면 사업성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어떤 위험신호가 실제 사업화 실패로 이어졌는가?
이러한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AI의 역할도 달라진다.
AI는 단순히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자료를 검색하는 도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장·특허·기업·투자·고객·사업화 성과 데이터를 분석해 기술의 시장성을 판단하고 적합한 고객, 기업, 투자전략 등을 제안하는 기술사업화 의사결정 지원수단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가 전문가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성공과 실패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문가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결국 기술사업화도 개인의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성공과 실패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학습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좋은 기술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내가 제안하는 해답은 다섯 단계다.
① 고객문제를 발견한다.
② CSS로 성공 가능성을 진단한다.
③ Return Map으로 성공경로를 설계한다.
④ EWS로 실패 위험을 조기에 관리한다.
⑤ 시장성과를 측정하고 다음 R&D에 환류한다.
이를 하나의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좋은 기술의 시장 성공
= 고객문제 × CSS × Return Map × EWS × 성과환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라는 점이다.
어느 하나가 0에 가까워지면 전체 성공 가능성도 크게 떨어진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고객문제가 없다면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좋은 기술을 선정해도 시장까지 가는 경로가 없다면 연구실에 머물 수 있다. 성공경로를 설계했더라도 위험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한다. 시장에 진입했더라도 성과를 측정하고 학습하지 않으면 다음 R&D에서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따라서 기술사업화 정책도 이제 ‘좋은 기술을 만드는 정책’에서 ‘좋은 기술을 성공시키는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좋은 기술은 저절로 성공하지 않는다.
좋은 기술은 선정하고, 설계하고, 관리하고, 측정하고, 학습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R&D 40조 원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기술사업화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