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 원리로 풀어 본 연구성과의 기술사업화
김승호 회장은 『돈의 속성』과 관련 강연에서 돈을 소중히 다루고, 일정하게 들어오게 하며, 모인 돈이 다시 돈을 벌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돈의 원리를 연구개발에 적용하면 연구성과를 매출로 연결하는 기술사업화의 세 가지 조건이 보인다. 바로 첫 고객, 반복 매출, 투자 회수다.
'한 중소기업이 공장 설비의 전력 낭비를 줄이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해보자. 연구팀은 밤낮으로 시험한 끝에 목표 성능을 달성했다. 특허를 출원하고 시제품도 완성했다. 정부 연구개발 과제의 최종 평가에서는 “우수한 연구성과”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연구팀은 곧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제품을 출시한 지 6개월이 지나도 구매하겠다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품을 살펴본 공장장은 연구팀에 이렇게 물었다.
“전기료를 줄여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설치하려면 생산라인을 얼마나 멈춰야 합니까? 투자한 돈은 언제 회수할 수 있습니까?”
연구팀은 기술의 우수성은 자세히 설명했지만, 공장장의 질문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인정받은 기술이 시장에서 매출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승호 회장의 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장면을 떠올렸다. 돈을 소중히 다루고, 일정하게 들어오게 하며, 모인 돈이 다시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리다. 이를 기술사업화에 적용하면 돈 되는 R&D의 세 가지 조건이 보인다. 바로 첫 고객, 반복 매출, 투자 회수다.
첫 고객이 돈 되는 R&D의 출발점이다
김승호 회장이 말하는 ‘돈의 중력’을 연구개발에 적용하면 첫 고객과 첫 매출의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돈이 모이면 더 큰 돈을 끌어당기듯, 첫 고객의 구매와 사용 경험은 다음 고객을 데려오는 힘이 된다.
장치가 효과적이라는 연구보고서만으로는 다른 공장의 구매 결정을 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한 공장이 자기 돈으로 장치를 설치하고 전기료 절감 효과를 확인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 공장에서 사용하고 있습니까?”
“설치 후 전기료가 얼마나 줄었습니까?”
“생산라인은 얼마나 멈췄습니까?”
이 질문에 실제 사례와 수치로 답할 수 있다면 첫 고객의 경험은 가장 강력한 영업 자료가 된다. 따라서 연구팀은 시제품을 완성한 뒤에야 고객을 찾아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 초기부터 고객의 불편을 조사하고, 개발 과정에 참여할 실증기업을 확보해야 한다.
연구비를 어디에 사용할지도 고객의 문제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남은 연구비를 제품 성능을 1% 높이는 데 사용할 것인지, 설치 시간을 단축하고 현장 실증을 하는 데 사용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공장장이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가 생산라인 중단이라면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추가 성능보다 간편한 설치 방법이다. 고객이 걱정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면 뛰어난 시험성적도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무료 실증과 유료 구매도 구분해야 한다. 무료라면 많은 고객이 한 번 사용해 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돈을 내야 한다면 제품 가격뿐 아니라 설치비, 생산 중단 시간, 고장 위험까지 따진다.
실증 현장에서 “좋은 기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이 성능과 가격이라면 실제로 구매하시겠습니까?”
고객의 거절은 실패가 아니다. 가격, 설치, 성능 또는 사후관리 중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시장정보다. 돈 되는 R&D는 고객의 칭찬이 아니라 첫 유료 구매로 시장성을 증명해야 한다.
반복 매출이 연구성과를 사업으로 바꾼다
큰돈을 한 번 버는 것보다 일정한 수입이 중요하다는 돈의 원리도 기술사업화에 적용할 수 있다. 장치를 한 대 판매하면 한 번의 매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설치 후 성능 점검, 부품 교체, 전력 사용 분석까지 제공한다면 고객과의 거래는 계속된다.
모든 제품에 구독료를 붙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반복해서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공장이 매달 전력 사용량을 확인하고 설비 효율을 관리해야 한다면, 연구팀이 보유한 측정 기술과 운영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장치 판매에 유지관리와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결합하면 일회성 연구성과가 반복 매출을 만드는 사업으로 발전한다.
첫 공장에 제품을 설치하면서 얻은 자료도 소중한 사업 자산이다. 설치에 걸린 시간, 전력 사용량의 변화, 고장 기록, 담당자의 의견을 축적하면 다음 제품을 개선할 수 있다. 첫 고객의 현장 데이터는 두 번째 고객의 불안을 줄이고, 두 번째 고객의 경험은 세 번째 고객을 설득한다.
돈 되는 R&D에서는 특허만 자산이 아니다. 고객의 사용 경험, 현장 데이터, 설치 방법, 유지관리 절차와 실패 기록도 다음 매출을 만드는 자산이다. 연구성과가 계속해서 새로운 고객과 매출을 만들어낼 때 기술은 스스로 일하는 자본이 된다.
투자 회수 시점을 알아야 돈 되는 R&D가 완성된다
공장장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기술의 원리가 아니었다. “투자한 돈을 언제 회수할 수 있는가?”였다. 고객은 제품의 최고 성능보다 자신이 투입한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함께 살펴본다.
나는 이를 점검하기 위해 CSS와 Return Map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CSS는 고객의 문제, 기술 경쟁력, 시장성, 실행역량과 회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도구다.
Return Map에서는 시장조사부터 제품 출시까지 걸리는 기간인 TM과 출시 후 손익분기점까지 걸리는 기간인 BEAR를 확인한다. TM과 BEAR를 더하면 시장조사를 시작한 시점부터 손익분기점까지 걸리는 전체 기간을 예상할 수 있다.
출시가 예상보다 늦거나 손익분기점 도달 기간이 너무 길다면 개발 방향, 제품 가격, 판매방식 또는 목표시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연구개발 과제가 끝나는 날짜뿐 아니라 첫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과 투자비를 회수하는 시점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연구팀이 공장장을 다시 만났다고 해보자. 이번에는 기술성능표와 함께 현장 실증 결과를 내민다.
“설치는 주말 정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이 공장의 전력 사용량을 기준으로 예상 절감액과 투자비 회수 기간을 계산했습니다. 먼저 한 개 생산라인에서 유료로 검증해 보시겠습니까?”
그제야 기술 설명이 구매를 검토할 수 있는 사업의 언어로 바뀐다.
돈 되는 R&D는 연구가 끝난 뒤 판매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첫 고객을 확보하고, 반복 매출을 설계하며, 투자 회수 시점을 계산하는 일이다. 과제의 성공을 넘어 고객이 자기 돈을 내고 구매하고 다시 찾을 때, 연구성과는 비로소 매출을 만드는 사업으로 성장한다.